제 23회 수상작 백제시

글 문효치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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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슴속에
매 한 마리 키우네

서늘한 기류 밖
푸른 별 하나 낚꿔챌

매 한 마리
숫돌에 부리를 갈아 날을 세우고
옹이를 찍어 발톱에 힘을 기르네

날마다 하늘을 우러러보며
별 하나 표적을 찾아

눈을 닦고 있는
매 한 마리 자라고 있네

제 23회 당선자 문효치 사진

당선후기

오랫동안 ‘백제’를 붙들고 살아왔다. 백제와의 만남은 우연이었다. 6ㆍ25때 월북한 아버지의 문제로 내 젊은 날은 억압과 두려움의 세월이었다.결국 건강을 잃게 되고 나는 죽음의 위기로 내몰리게 되었다. 늘 죽음을 강하게 의식하며 지냈다. 그런 때에 백제와 만나게 되었다. 더 구체적으로 말하면 무령왕릉의 발굴이라는 사건을 만난 것이다.

발굴된 유물들 앞에서 나는 경이로움을 느꼈다. 천오백 년 전의 시간이 현재와 합쳐지는 순간이었다. 이 통합은 때로는 천둥번개처럼 이루어지기도 하고 때로는 솜이불에 물이 스며들 듯 야금야금 이루어지기도 했다.

나는 이 유물들을 수단으로 삼아 과거(백제)의 세계로 갈 수도 있었고 또 과거의 사람들을 현재로 데려올 수도 있었다. 삶과 죽음의 경계가 허물어지고 나는 죽음이라고 하는 무서운 함정에서 상당 부분은 자유로울 수 있었다. 때로는 삶과 죽음 그 너머의 세계를 탐방할 수도 있었다.

이러한 경험은 내 상상 속에서 상당히 구체적이었다. 그리고 이러한 경험의 토양 위에서 내 시는 싹틀 수 있었다.

첫 시집에서부터 등장한 백제는 최근의 시집까지 줄기차게 나오고 있었다. 그러나 누구의 주목도 받지 못했다. 아무도 관심 가져 주지 않는 외로운 작업을 부단히 해 왔다.

이러한 나의 ‘백제’에 정지용문학상이 관심을 가져 주었다. 크게 바라는 바는 아니었지만 내심 누군가로부터 인정받고 싶은 내 40년 작업이 비로소 빛을 보게 된 것 같아 기쁘기 그지없다. 

하지만 인내와 고통 속에서 외로운 작업을 하는 시인이 어디 한둘이겠는가. 어쩌면 그들 중의 누군가에게 돌아갈 수도 있었을 이 상이 나에게 덜렁 주어진 것에 미안함도 없지 않다. 여생이 얼마나 남아 있지는 알 수 없으나 내 상상력이 살아 있는 동안 열심히 할 것을 다짐한다. 이것이 그 미안함을 보상할 수 있는 길인 듯하다.

나에게 위안과 용기를 부어준 이 상의 관계 기관과 심사위원들께 감사의 마음을 표한다.